제15회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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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8월_정하선_신명, 그리고 민중미술의 과거와 현재

신명, 그리고 민중미술의 과거와 현재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서포터즈 정하선

 

성인이 되고, 드디어 입시가 끝나고, 이제 좀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즐겨보자! 할 때 즈음 코로나19가 세상을 뒤집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 어려워졌고, 이런 거리두기는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코로나 3년 차. 코로나19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있고, 덕분에 저도 올해 비로소 여러 전시들을 보러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막 미술에 눈을 뜬 제가 여러 곳의 전시를 보면서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작품이 있었는데요. 바로 홍성담(1955~)과 오윤(1946~1986)의 판화 작품들이었습니다. 


홍성담, < 북 >


민중미술의 시작이었던 1980년대.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홍성담, 오윤과 판화. 사전 지식이 없던 제가 이 작품을 보고 떠오른 것은 신경림의 시, < 농무 >였습니다.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라는 구절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작품이죠.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면 누구나 문학시간에 한 번쯤 보고 고민해보았을 그 작품. 홍성담의 작품 속 인물의 일그러진 표정과 격동적인 몸짓이 신이 나는 듯이, 또 분통이 터지는 듯이 보였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민중미술은 순수미술에 치우쳐 있던 미술계를 비판하며 현실 문제를 직시하는 저항 미술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1980년대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라는 시대의 과제를 쟁취하기 위해서 민족, 민중이라는 공동체 정신으로 뭉쳐야 한다는 미술계의 새로운 바람이 일어난 것이죠. 이 중심에는 1979년 결성된 '광주자유미술협의회'(이하 '광자협')과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존 미술계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예술은 현실의 반영'임을 강조하며 미술로서 시대 상황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죠. 


1979년 광주 산수동 홍성담의 화실에서 결성된 '광자협'은 1980년 5월 첫 발표전을 준비하였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무산되었습니다. 그 대신 광자협은 광주의 계엄령 현장을 목격하고 현장에 뛰어들어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신군부가 들어선 7월 홍성담과 최열의 주도로 창립전을 대신하여 죽은 사람들의 혼을 기리는 진혼굿 형식의 야외작품전을 열었지요. 여기에선 지금의 행위예술과 비슷한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보는 이들이 5월의 응어리를 터뜨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광자협의 실천 미학에는 “신명”이 있었습니다.


광자협은 제2선언에서 “신명이야말로 바로 현대예술이 잃어버린 예술 본래의 것이었으며, 집단적 신명은 바로 잠재된 우리 시대의 문화역량”이라고 하며 “신명”을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민중예술의 중요 개념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학적 실천과 사회참여를 이어나갔지요. 처음에 제가 저 목판화를 보고 시 < 농무 >의 “신명이 난다” 구절을 떠올린 것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이렇게 현장성을 강조하며 진행된 1980년대와 90년대 민중미술에서 가장 기특한 역할을 했던 것이 '목판화'입니다. 재료도 간단하고 대량 복제가 가능했던 목판화로 찍어낸 몇 천부의 작품들이 현장에서 바로 벽보나 전단의 구실을 할 수 있었거든요. 과거 민중미술 작품들 중에 판화가 많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판화 말고도 집회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걸개그림, 벽화 등의 여러 작품들이 나타났고 또 이후 민중미술 단체들은 투쟁운동에서 더 나아가 교육, 민족 역사 아카이브 축적의 성과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당시 미술계가 서양의 낯설고 새로운 미술을 좇기에만 바쁘다고 비판하며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앞세워 현실의 문제를 직면하게 하였던 미술계의 큰 바람, 민중미술. 그 등장으로부터 어드덧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 복잡해진 사회와 더 복잡해진 문제 속에 있는 지금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을까요? 이렇게 민중미술의 현재 의미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80년대의 광주 민중미술과 신명 사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얼마 전 ACC에서 열었던 2022 한국 민중미술 특별전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을 보며 민중미술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엿보고 왔는데요. 민중미술을 단순히 과거의 미술사조로 보는 단편적 시야에서 벗어나 '공동체'와 '현실 문제'로 연결되는 현시대의 민중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원호의 < 부(浮)부동산 >이 인상 깊었는데요. 우리의 복잡한 사회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여러 민중미술 작품들. 여러분 마음에 와닿는 작품을, 지구를 저항·공존·연대·돌봄의 장소로 보여줄 14회 비엔날레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참고자료

김허경(Kim Heo-Kyung). "1980년대 광주민중미술의 전개양상에 나타난 신명(神明) 연구." 민주주의와 인권 18.2 (2018): 109-146.

 

국립아시문화전당 2022 한국 민중미술 특별전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