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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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8월_김가원_문화예술계의 부지깽이, 박양우를 만나다

문화예술계의 부지깽이, 박양우를 만나다

:  취임1주년 기념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인터뷰 

 

14회 광주비엔날레서포터즈 김가원

 

 

요즘 MZ세대 유행어에 갓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들갑을 떨 때 사용하는 (God)’에 인생의 ()’을 합친 말로,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생산적인 일과로 일상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아주 부지런한 삶이죠. 40년 가까이 대한민국 문화예술 부흥을 위해 갓생을 살아온 이가 있습니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입니다. 가을을 부추기는 늦여름의 보슬비가 내리던 지난달 11, 광주비엔날레 취임 1주년을 맞은 박양우 대표이사와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예술을 통해 더불어 나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어떻게 법대 전액 장학생에서 문화예술 공직자가 되었나요?

대학 3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 합격 후 군대에 다녀와 공직 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 교육부에 들어갔다가 문화부로 옮겨 공직생활을 했어요. 국가가 경제적으로 나아지다보면 이미 역사를 통해서도, 다른 나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문화의 시대가 옵니다. 때문에 문화의 역할이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해 들어왔고 사십여 년간 문화예술계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또 중학교 2학년 때 미술 선생님께서 제 그림을 보고 조용히 부르시더니 미대를 갈 생각이 없느냐 물어보셨어요. 부모님이 법대 진학을 원하셨기 때문에 미대를 갈 수는 없었지만 이런 기억 때문에 특히 미술에 대한 관심은 계속 있었습니다.“

 

- 대표이사가 아닌 인간 박양우를 소개해주세요.

부끄러움 많은 수줍은 시골청년. 제 제자들이 학교를 떠난 후 조그마한 책자를 하나 제작해주었는데 그 책 이름이 시골 소년 박양우예요. 초등학교 시절에 공부 좀 하니 어린이회장을 지명 받아 하게 되었는데 수줍어 회의를 끝까지 마무리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만큼 부끄러움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앞에 나서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참모나 스태프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최종의 리더가 되다보니 앞서는 역할도 익숙해졌어요. 그래도 공격형이기보다는 수비형이라 영어로 피스 메이커(peace maker)’라고 하죠. 그런 조정하는 역할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 박양우 대표이사의 고향이기도 한 광주에 대한 바람이 있나요?

현 광산구, 구 광산군 평동에서 자랐어요. 사실 50여년 전 중학교 때 봤던 광주 송정역과 지금 모습이 별반 큰 차이가 없어요. 그렇지만 광주 지역 내로 들어오면 굉장히 발전되어있어요. 제가 살던 평동은 동네가 사라지고 이미 산업단지가 들어왔어요. 해외를 돌아다닌 후 광주를 보니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아파트와 모텔로 즐비한 모습을 보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서 특별한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광주는 예술의 도시로서, 예향의 도시로서 자리매김해 나가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다시 돌아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직, 그리고 1년 지났습니다. 14회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기대가 클 것 같아요.

제가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직을 다시 맡게 된 건 비엔날레의 본질이 퇴색되어가고 있다, 빛이 바래져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어요. 그래서 비엔날레는 비엔날레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생각해요. 동시대 미술을 새롭게 조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될 것인가 하는 실험적이고 치열한 싸움의 모습을 보여야하는 게 비엔날레라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광주비엔날레 역시 위기라 생각이 들었어요. 때문에 내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크든 작든 세계 미술사에, 비엔날레에 파장을 던질 수 있는 전시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제에서도, 전시 기획이나 작가들도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전시가 되도록 예술감독과 늘 이야기하며 제14회 광주비엔날레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가만히 있어도 변화가 됩니다. 광주비엔날레 역시 가만히 있어도 변화는 되겠죠.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봐요.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계적인 비엔날레다운 비엔날레를 만드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우리 조직이 존재하구요. 함께 전시를 만들어가는 재단 직원들의 마음가짐 역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수줍음 때문에 학생회의 조차 마무리 할 수 없었던 소년이 대한민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대표의 자리에서 모두를 대변하기까지 모든 순간은 수줍은 소년에게는 어느 하나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간의 한결같은 갓생은 시민들에게 든든함과 기대감을 줍니다. 문화예술의 매개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삶을 열심히 살고자하는 사람으로서 자세를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었습니다.

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예술이 갖는 힘이 얼마나 세상에 대한 커다란 외침으로 전해질 수 있는지 증명할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박양우 대표이사와의 대담 풀영상은 광주비엔날레 공식 유튜브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