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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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월간 GBS (글)] 4월_조주아_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인터뷰 part 1

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인터뷰

Part1. 큐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기까지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서포터 조주아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꽤나 큰 의미가 있던 경험이랄 게 있나요? 혹은 훗날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있어 길잡이의 역할이 되어준 경험은요? 흔히 이러한 경험을 터닝 포인트라 부릅니다. 내게도 이러한 터닝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문예창작과 학생이 처음으로 문학이 아닌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었죠. 고고미술사학과를 이중전공하며,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꿈을 안고 광주비엔날레 서포터즈가 되기까지 그 시작점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영국 테이트모던 갤러리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광주비엔날레의 총예술감독인 이숙경 큐레이터 또한 첫 시작점이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내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가 되기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미술과 삶이라는 영역 안에서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큐레이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나요?

저도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의 관심사가 미술과 인문학이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려했었죠. 미술사나 미술평론 같은 걸 전공하면, 이 두 분야에 대한 지식을 함께 쌓지 않을까 예상하며 예술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또 큐레이터로 활동할 당시 관람했던 1993년의 휘트니 비엔날레와 영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할 당시 관람했던 2002년 도큐멘타11은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전시였습니다.”

 

-두 전시를 통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받으셨을까요?

휘트니 비엔날레는 당시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역사상 최초의 순회전을 열었는데 인종 문제, 성 정체성, 에이즈 팬데믹 등 매우 파격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들을 전폭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미술 전시가 미적 특성에 대한 것만이 아닌 일상의 문제, 세계관의 측면들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을 제게 보여준 전시였죠. 도큐멘타11은 이제 고인이 된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 오쿠이 엔웨저가 최초의 유색인종자로서 예술 감독을 받은 전시였는데, 비서구적 사고와 시각이 기획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전지구적 서사를 보여줄 수 있는 틀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준비한 첫 기획전이 기억나시나요?

전에도 많은 전시를 맡았었는데, 제가 작가 연구, 선정, 작품 설치, 도록 집필 등 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전시로는 개성과 익명 사이: 영국현대미술전(1998)’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학예연구실장이던 정준모와 영국문화원의 시각미술 전문가 앤 갤리거 등과 함께 기획했었죠. 길버트&조지, 아트&랭귀지 등 중견 작가뿐만 아니라 사라 루카스, 더글러스 고든, 게빈 터크 등 한국에선 다소 덜 알려져 있던 영국 현대미술 작가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젼시였습니다. 이 전시 준비를 위해 1996년부터 1년간 런던에서 연수한 게, 이후 제가 영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박사 과정 재학 중 한국 미술 잡지와 신문 등에 지속적으로 영국 미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테이트모던의 주요 전시를 2000년 개관 당시부터 꾸준히 관람하고 글로 전해왔었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화력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고 연대기적인 미술사의 서술 대신, 주제전 방식으로 소장품을 소개했던 테이트모던의 실험들은 정말 인상적이었죠. 더불어 테이트 브리튼, 리버풀, 세인트 아이브즈 등과 함께 4개의 미술관이 서로 연관되면서 독립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저는 2007년 테이트 리버풀의 큐레이터로서 처음 테이트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4개의 미술관이 소장품을 공유하기 때문에 저는 아시아 미술 구입 전문 큐레이터 역할을 함께 겸임했었고, 2012년부터는 테이트모던 큐레이터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어에 대한 장벽(영어)는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려면 해당 국가 언어로 의사소통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대화와 작문이 가능해야겠죠. 저는 한국 교육 과정을 통해 영어를 배운 케이스고, 20대 중반에 비교적 늦게 영국 유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한국 대학과 대학원에서 접한 원서들이 전공 분야에선 좋은 기반이 되었고, 영국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학술적 방식의 영어 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언어는 이를 둘러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때 더 학습이 잘 되니, 해당 국가의 역사나 문화사,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유용합니다.”

 

-해외에서 외국인 큐레이터로 산다는 건 어떠세요?

현대미술이라는 분야 자체가 비교적 개방적이고 진보적이기 때문에 보통 사회에서 경험하는 인종차별은 거의 보기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인으로 산다는 건 무슨 일이던 간에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서 한국에서 외국인 큐레이터로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생각해보면 좋고요.”

 

-국립현대미술관과 테이트모던 큐레이터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제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였을 때인 1990년대 말과 테이트모던 수석 큐레이터인 지금은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장소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별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한국과 영국이라는 맥락 또한 지나치게 구별하기는 힘든데,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두 미술관이 지닌 문화적 성격이 아닐까 싶어요. 테이트모던은 영국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서 전시 프로그램, 미술관 소장품, 큐레이터의 역할에서 자율성이 우선시 되는데, 대신 국가로부터의 재정적 도움이 제한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미술관의 전문성, 큐레이터들의 창의성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해외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을까요?

미술관을 포함한 모든 회사에서 외국인을 채용할 때, 내국인 후보 중 이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려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세계적인 수준에 다다를 분만 아니라 이를 객관적으로 인증할 수 있는 경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이미 큐레이터로 활동한 점, 독립 큐레이터로서 한국과 영국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친 점,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점 등이 테이트모던 큐레이터로 선정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큐레이터를 꿈꾸는 청춘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전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라기보다 공동체적인 측면으로 일해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적으로 미술과 작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태도가 중요하고, 또 디자인, 홍보, 출판, 작품 설치, 운송 등 전시를 꾸리는데 연관된 다양한 동료들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추상적이거나 어려워 보일 수 있는 작품의 메시지를 대다수의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미술의 동향과 역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키우는 한편 협력적인 태도와 관대한 인간관계를 중시한다면 분명 좋은 큐레이터의 바탕이 될 겁니다.”

 

꿈을 꾼다는 건 아마도 어떤 사건을 겪었거나 혹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끊임없는 의심과 혼란도 존재할 테죠. 그러나 그 순간들 사이에, 공감으로 묶인 다정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곤 합니다. 책이 되었든, 전시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간에 누군가 나와 비슷한 길을 걸으려 하고 이미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곤 합니다. 이숙경 큐레이터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저는 다시 한 번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이숙경 큐레이터의 인터뷰와 앞으로 다가올 제 14회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사랑하는 것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