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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마음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서포터 정하선
광주비엔날레, 광주정신, 5·18. 이숙경 비엔날레 총감독님의 인터뷰에서는 이런 단어들이 반복되어 나왔습니다. 수도권에 살던 제가 광주로 전학을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5·18을 떠올렸어요. 5월 18일의 광주. 80년 5월의 광주. 저는 광주라고 무조건 5·18을 떠올리는 게 조금 촌스럽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 생각을 바꿨던 책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접어둔 부분이 여럿 있었습니다.
4장 ‘쇠와 피’에는 5·18 이후 가담자로 수감되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문의 방식이 정교하게 바뀌고, 두 사람에게 한줌의 식사를 나누어 먹게 합니다. 당연한 식욕 때문에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반복하다 결국 큰소리가 납니다. 그때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합니다.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p119 쇠와 피
5·18 사건은 끝이 났지만 남은 자들에게는 끝나지 않았던 이야기. 살아있는 것, 허기를 느끼는 것, 이 당연한 인간의 욕망이 치욕으로 느껴진다니. 저는 이 부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절절함을 느꼈습니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그렇기에 ‘밥’은 곧 ‘생명’을 나타냅니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서 5·18 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주먹밥을 날랐던 양은함지박이 있더라고요. 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닫고 뒤편에 모여, 동네 부녀회에서 쌀을 모으고 또 함께 모여 그 큰 함지박 안에 밥을 뭉쳤겠지요. 그런 급한 상황에서, 겨우 받은 밥을 입에 넣으면서도 누군가는 남겨진 자의 설움, 치욕을 느끼기도 했을 것입니다.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는 작가님이 살았던 중흥동 옛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을 열 살에 들으셨다고 하셨어요. 저도 광주에 살게되고, 점점 크면서 80년도에 광주에 계셨던 엄마, 아빠로부터 그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흥동에 살았던 엄마는 어렸던 그때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 골목골목 옮겨졌던 큰 함지박을 기억합니다. 2층은 총알을 막아줄 담장이 없어서 온 가족이 솜이불을 덮어쓰고 있어야 했던 오뉴월에도 뭉쳐졌던, 다른 사람들을 위한 주먹밥. 그 마음.
밥을 나누고 생명을 나눴던 대동정신. 저는 이렇게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광주정신’을 배웁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광주정신’은 5·18 그 당시에만 나타난 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겁니다. 내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또 어떤 모습으로 재현될까요? 더 가까이에서는 이번 4월 20일부터 시작될 베니스 5ᆞ18민주화운동 특별전 ‘꽃 핀 쪽으로’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꽃 핀 쪽으로’는 한강 작가 소설 「소년이 온다」 제6장의 제목이기도 하지요. 기대되는 광주의 봄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