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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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비엔날레!
글 : 정하선
노트북 바탕화면 한 켠에 자리잡은 ‘비엔날레’ 폴더. 그 안에는 서포터즈로 활동하
며 보았던 여러 문서들, 그리고 매달 하나둘씩 쌓았던 초안과 최종본들이 있습니
다. 어느덧 해단식을 앞에 두고 폴더를 찬찬히 살피니 가장 오래된 파일은 무려 작
년 1월! 서포터즈로 선발되기를 바라며 썼던 기획안 원고더라고요.
제가 광주비엔날레 서포터즈라는 단어를 처음 본 건 친구와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
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였습니다. 2022년을 코앞에 두고 다녀온 그 여행에서 저는
의미있는 일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용기를 얻었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
는 길에 광주비엔날레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기사를 만났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글 분야에서는 막내이자 유일하게 미술이 비전공인 학생 서포터가 되었고, 부족한
저이지만 감사하게도 멘토님과 다른 서포터즈분들게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
다.
16개월, 1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이번 14회 비엔날레가
차근차근 준비되는 과정들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가 발표되고, 참여작가가 공개되며 윤곽이 잡혀가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참 소
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을 글로 이렇게 전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또 제
14회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광주폴리, 예향 광주에 대해서도 더 공부하며 광주라는
이 지역에 대해서,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
다.
작년 3월과 4월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5·18특별전을 소개하며 특별전의 전시주제
와 맞닿아있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과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해 다
뤘습니다. 문학과 미술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을 만든다는 점에서 ‘저편’을 바라
보게 하는 예술에 대해 전할 수 있어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 호랑가시
나무 아트폴리곤에 전시된 작품, 광주의 중층적 역사와 한강의 『새』를 담은 모리
유코의 키네틱 조형물을 보면서 이런 연계와 이때의 글들이 떠올랐어요. 5월 ‘광주
폴리에서 만난 모모스커피와 지역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글은 ‘콩과 들깨’
마지막 현장에서 전주연 바리스타와 모모스커피를 만나며 생각하게 된 바를 담았
는데요.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가는 게 당연해져버린 우리 시대에서 젊은
기업과 로컬의 상생에 대해 말할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8월의 글 ‘신명, 그리고 민
중미술의 과거와 현재’에서는 민중미술과 판화 작품에 대해 다뤘는데요. 민중미술
의 중심이었던 홍성담과 오윤의 판화, 1980년대 광주민중미술에 대해 말하는 이
글은 제가 특히 여러 자료를 공부하며 공들여 쓴 글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민중미
술과 광주에서 판화의 의미있는 역할을 전했던 것이 이번 비엔날레 제2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크게 관람객들을 맞았던 비엔날레 팡록 술랍의 목판화 연작 <광주
꽃 피우다>(2023)와 그 뒤로 보이는 오윤의 판화를 감상하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
이 됐었다면 좋았겠다는 마음입니다.
광주비엔날레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또 잊을 수 없는 것은 광주교육대학교 영재교
육원 미술반 보조교사로 미술 영재반 아이들과 함께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관 체험학습을 간 날이었습니다. 저는 예비교사로서 영재교육원 미술심화반을 맡
아 영재반 수업을 보조하고 있는데요. 이번 비엔날레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한 달여
간 진행하며 서포터즈로서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더 잘 전달하고, 비
엔날레 전시를 어린이 시선에서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은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즐겼습니다. 1 전시관에서 불레베
즈웨 시와니의 작품을 둘러보고 아이들은 물과 우리는 굉장히 가깝구나 느꼈다고
했습니다. 왜 바닥에 흙이 깔려있는지, 물 위로 영상이 투영되는 것은 어떤 의미인
지 물음표를 던지기도 하면서요. 2관에 들어서서는 가까이 걸려있는 팡록 술랍의
목판화와 그 뒤로 보이는 오윤의 목판화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초등학
교 3,4학년의 어린이들이 아무런 설명을 없이도 이 작품들을 보고 5·18민주화운동
을 떠올리고 팡록 술랍의 <광주 꽃 피우다>(2023) 작품 속 꽃들이 희망을 의미하
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놀랐습니다. 심화반 고학년 친구들은 작품 자체
의 물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유지원의 <한시적 운명>(2023)을 감상하
며 멀리서는 튼튼한 벽인줄 알았던 것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 쉽게 부서질 것 같은
판지로 이루어짐을 발견하고 작품 속 재료, 재료 본연이 가진 특성에 대해서 생각
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오브제로 이루어진 루이사 노게이라의 작품을 감
상하면서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의자가 저렇게 위치한 이유, 의자 앞에 종이
길이 놓여있는 이유를 만들어보기도 하며 적극적인 감상을 나누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직접 만지고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이나 워
크숍이었는데요. 예술가로서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탐구해 온 작가 엄정순 작
품들, <코 없는 코끼리>(2023)을 비롯한 여러 조형물들을 직접 만져보고 눈을 감
고 느껴보기도 하며 자신이 평소 보았던 코끼리와는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었
다고 했습니다. 나와 다른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써 우리가 꼭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들을 사용해서 세상을 본다는 점을 알게된 것 같아요. 비
슷하게 타렉아투이의 전시 연계 소리와 진동 워크숍에서도 아이들은 물건들 위에
손을 얹고 떨림을 느끼며, 귀로 직접 듣지 않고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리에 대해
서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한 가지 감각에 얽매이지 않고 더 다양하
게 세상을 인식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 저 역시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의 현장
을 목격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또 1세대 실험예술 작품 연계 관객참여프로그램에 아주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이건용의 <바디스케이프>(1976)의 설명을 듣고 방법대로 손을 움직
여 자신의 자취를 남기면서는 각자의 마음 모양, 하트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
했습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한 친구는 이후 비엔날레 연계 작품 만들기에서 벽
면에 종이를 붙여두고 자신이 정한 방법대로 관객들이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비슷
한 형태의 참여형 작품을 만들어 저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또 제가 놀란 것은 이
승택의 <무제(이 물건으로 무엇으로 만들어도 좋습니다)>(1967~1970/2023)에 대
한 아이들의 뜨거운 반응이었습니다. 작가에 대한 완전한 권위를 거부하며 관객들
이 노끈과 밧줄을 만들고 재구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작품을 아이들은 충분히
누리더라구요. 이런 열린 감상의 경험이 매력적이었는지 이후 연계작품 만들기에
서도 수용자 중심의 자유로운 감상을 제공하는 또 다른 '무제'들이 많이 탄생했습
니다.
아이들에게 그랬듯이 또 저에게 그랬듯이 이번 비엔날레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
게 사람들을 적시고, 깊은 곳에 스며들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 글이 여
기에 조금이나마 일조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은데요. 저는 서포터로 활
동하며 참 많이 배우고 경험할 수 있어 참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럼 이제 정말
‘물부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