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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광주박물관 속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글: 박명지
설치 미술(Installation art)이란 무엇일까요? 설치 미술이란 작품이 설치될 공간에 맞추어 작가가 무엇인가 선택하고 배치하며 구성되는 작품을 의미합니다. 이 미술 형식은 작품이 일방적인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주위 공간과 융합하며 작품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선보입니다. 따라서 설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장소’입니다. 똑같은 작품이어도 작품이 놓인 곳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소나 전시 공간이 지닌 장소적, 역사적 맥락은 설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외부 전시 공간은 장소별 독특한 건축, 역사, 문화적 맥락에 조응하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중,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의 역사를 품은 곳이라는 장소적 맥락 속 전시의 네 가지 소주제 중 ‘일시적 주권’과 관련된 다수의 작품을 선보이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면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예술가 캔디스 린(Candice Lin)의 작품이 눈길을 끕니다. 작품은 국립광주박물관을 대표하는 도자 유물과 그 역사를 맥락으로 삼았습니다. 리튬 배터리와 관련된 동시대 글로벌리즘을 오랫동안 연구한 캔디스 린은 한국의 지리적, 역사적 측면에 영감을 얻어 도자 조각과 공장 작업대,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구성된 <리튬 공장의 섹스 악마들>(2023) 라는 설치 작품을 선보입니다. 한국의 여러 특징 중 세계에서 가장 큰 리튬 배터리 생산 기업이 위치한 곳이자 도자기를 대량 생산한 역사가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춘 그는 지난해 광주에 직접 방문하여 리서치를 진행했습니다. 국립광주박물관 건립 계기가 되었던 신안 해저 도자기를 관람한 뒤, 오향종 옹기장을 찾아 옹기의 역사, 제작 과정을 배우고 정관채 염색장의 작업실을 방문해 쪽 염색 과정을 직접 체험한 작가의 경험은 전시장 곳곳에 위치한 옹기와 작업대 위에 놓인 쪽 염색물과 같이 작품 곳곳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리튬과 도자기라는 대량생산에 관한 두 갈래의 역사와 복잡하게 얽힌 쟁점과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서구식 산업혁명과 현대사회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표현합니다. 또한 캔디스 린의 작업과 함께 전시된 신안 해저 문화재 도자류 746점은 예술품으로 여겨졌던 도자기를 노동의 결과라는 새로운 관점을 통해 바라보게 합니다.
박물관 로비를 점유한 김기라 작가의 <편집증으로서의 비밀 정원>(2023) 또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작품은 도자기, 분재, 가면, 수석, 불상, 탱화 등 소위 ‘동양적’ 혹은 ‘한국적’이라고 간주되는 사물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작가는 설치 작품과 함께 놓인 출판물 『아시아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 안내서 – 맹인과 코끼리』(2023)를 통해 각 물건의 역사와 맥락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동양적인 것’으로 단순하게 규정짓는 서구 중심주의적 태도와 습관을 꼬집습니다. 또한 알루미늄 제품을 재활용해 배롱나무 형태로 제작된 소핍 핏(Sopheap Pich)의 조각 연작 <춤>(2022)은 국립광주박물관 정원에 자리한 백일홍과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작가는 캄보디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캄보디아 전역에서 수집한 현지 재료로 조각과 설치 작품을 만드는데, 여기엔 유년 시절 베트남 침략으로 캄보디아를 떠나 난민이 되었던 그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작품에 사용된 알루미늄은 캄보디아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재료를 재활용한 것으로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과 연결됩니다. 이 작품의 제작 배경은 국립광주박물관의 장소성과 결합하여 관람자의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외에도 사모아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유키 키하라(Yuki Kihara)는 일본의 기모노와 사모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예술 형태 중 하나인 시아포라는 두 개의 예술 형태를 접목한 <사모아에 대한 노래 – 모아나(태평양)>(2022)를 통해 외세의 자원 착취를 경고합니다. 제임스 T. 홍(James. T. Hong) 의 2채널 영상 작품 <영혼에 대하여> (2021)는 익명의 인간 화자와 개, 미확인 바이러스의 관점을 번갈아 제시하면서 서로 다른 종 사이에 전제된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인종 및 계급에 관한 사회정치적 이슈를 다룬 작가의 주제 의식을 강조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호남 서화를 대표하는 근원 구철우 선생의 작품 <행초 10곡>(1970년대)은 윤리와 도덕, 일상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시 구절로 구성되어, 작가의 인문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공간이 가지는 맥락 및 특성과 결합하여 후기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미술 사상이 이주, 디아스포라와 같은 주제에 관련한 방식에 주목하고 억압, 차별과 같은 이슈를 아우르며 전시의 주제와 공명합니다. 이처럼 본 전시의 소주제를 확장해 탐구하는 외부 전시 공간은 이번 비엔날레의 ‘회전축(pivots)’ 역할을 담당하며 주제에 대한 창조적인 실험과 에너지가 교차하는 합류점과 진입점을 제공합니다. 국립광주박물관을 포함한 외부 전시 공간은 전시 기간 무료로 개방된다고 하니 방문하셔서 각 장소의 건축, 역사, 문화적 맥락과 어우러진 작품들 관람하는 건 어떨까요?
참고자료
“설치 미술”, 『음악미술 개념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60363&cid=47310&categoryId=47310 (접속일: 2023.05.24.)
오상길, 「설치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수첩』, 1985년 8월호, https://www.arko.or.kr/zine/artspaper93_08/19930808.htm (접속일: 2023.05.24.)
이영욱, 「설치미술 – 그 수용, 정착과 관련된 몇가지 논의-」, 『현대미술관 연구』 제 7집, 1996, https://www.mmca.go.kr/study/study07/study07-37.html (접속일: 2023.05.24.)
Virgine Puertolas-Syn, “Visiting Sopheap Pich Art Bee-Hive Studio in Cambodia – Virginie Puertolas-Syn“, Artlyst, 12 March 2023, https://artlyst.com/features/visiting-sopheap-pich-art-bee-hive-studio-in-cambodia-virginie-puertolas-syn/ (접속일: 2023.05.24.)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가이드북』,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가이드북(광주: (재)광주비엔날레,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