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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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와 백남준의 인연 :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며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서포터 유지현


비디오아트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1932-2006)’ 입니다. 우리에게는 백남준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는 원래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독일 유학 도중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었고, 이후 행위 예술가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캔버스 대신 비디오를 아트와 결합하여 ‘비디오아트’라는 장르를 이루어냈죠.

 

백남준은 일찍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현대미술의 거장입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위인전에 나올 정도로 만인에게 알려진 예술가인데요. 이처럼 ‘백남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유명세만큼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내건 수많은 전시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중 백남준아트센터에서도 이를 기념한 특별전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가 3월 3일부터 9월 18일까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백남준의 생일인 7월20일부터는 《바로크 백남준》이 10월 30일 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이러한 미디어아트의 세계적인 거장 백남준이 광주비엔날레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어떤 인연인지 이번 뉴스레터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와 함께 그의 대표작들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광주비엔날레와 백남준과의 인연은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경계를 넘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1992년 백남준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릴 대규모 회고전으로 평창동의 올림피아호텔에 묵고 있었습니다. 그때 1세대 한국 현대조각가 김영중(1926-2005)은 백남준에게 광주비엔날레를 유치시키는 과정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문화예술의 발전에 대해 고민하던 백남준은 이 제안을 반겼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열리는 세계미술전람회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년 단위로 꾸준히 열리는 ‘비엔날레’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죠.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던 백남준은 자신의 국제 네트워크를 이용해 광주비엔날레를 추진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영향으로 1994년 광주문예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도 뛰어난 국제미술계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게다가 백남준은 국가, 민족, 이념, 종교라는 ‘경계를 넘어’ 벽을 허문다는 전시 주제에 따라 전시기획자를 5대양 6대주로 나눌 것을 제안했습니다.

 

백남준의 광주비엔날레를 위한 행보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광주비엔날레 개최에 맞춰 <고인돌>이라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작품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광고에 출연했을 정도라니, 그 열정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마침내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첫 회가 개최되었는데요.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제정한 ‘미술의 해’, 광복 50주년과 맞물려 열린 광주비엔날레의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백남준의 행보는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개막행사까지 이어집니다. 그는 30분 동안의 비디오 오페라를 관객에게 선보였습니다. 피아노를 넘어뜨리는 행위에서 전통에서의 탈피를, 야채와 계란이 뒤범벅된 모습에서는 자연의 조화를 말했습니다. 이렇듯 백남준은 온 힘을 다해 제1회 광주비엔날레의 처음과 끝을 함께해 주었습니다.

 

- 대표 작품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 1988

<다다익선>은 백남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텔레비전이 탑처럼 쌓여 있는 <다다익선>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작품입니다. 1003대의 텔레비전으로 만든 작품의 높이는 무려 18.5m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었지만, 많은 문제로 2018년 2월 가동이 중단되었죠. 기쁜 소식은 올해 하반기에 작품이 재가동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다다익선>이 켜진 모습을 볼 날이 무척 기대됩니다.

 

, 1974(2002) 

백남준은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입니다. 부처는 텔레비전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종교적 구도자인 부처가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텔레비전을 보는 현상이 무언가 역설적이게 보입니다. 작품을 보기위해 고개를 내민 관객의 모습 또한 텔레비전에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렇듯 는 스크린에 비친 가상 세계와 물리적인 현실 세계의 공존을 경험하게 합니다.


, 1974(2002)

어두운 열대 숲 사이로 스크린 화면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에서 보듯 텔레비전으로 만들어진 정원의 광경은 관객의 눈길을 한눈에 사로잡습니다. 자연에 감춰진 텔레비전은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스크린 속 영상은 백남준이 1973년에 제작한 <글로벌 그루브>라는 비디오 작품으로 세계 여러나라의 음악과 춤을 볼 수 있습니다.

 

<거북(Turtle)>, 1993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거북이 바다를 유영하는 듯합니다. 텔레비전 166대로 이루어진 <거북>은 울산 시립미술관 소장품 1호로 울산시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울산은 백남준의 <거북>을 소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죠. 그 이유는 바로 울산을 대표하는 거북 형상의 바위 반구대 암각화가 <거북>과 문화적 의미에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울산을 대표하는 작품인 <거북>이 왠지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고인돌(Dolmen)>, 1995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작품은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은 제1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인포아트(Info ART)》에서 출품되었습니다. 백남준은 광주에 직접 와서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이때 전남 순천의 고인돌 공원을 방문하여 영감을 얻은 그는 5·18민주화항쟁으로 희생된 고인들을 떠올리며 <고인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시 후 백남준은 작품을 광주비엔날레재단에 기증했는데요. <고인돌>은 여전히 광주비엔날레 재단 사무동 제문헌 1층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백남준.jpg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21일 당시 국민회의 총재 신분으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을 방문해 '고인돌'을 관람하고 있다.

 

참고자료:

조상인,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광주 고인들을 위한 고인돌 만들어야지 ... 경계를 넘어 CF찍다”, 서울경제, 2019.08.23

이선,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9> 새로운 시대, 도전의 예술가 백남준”, 전남일보, 2020.08.04.

박진현, “백남준이 울산으로 간 까닭은”, 광주일보, 2022.03.02

 

백남준아트센터 데이터베이스(db.njpart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