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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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광주의 예향(藝鄕)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서포터 김가원
흔히 광주를 의향(義鄕), 예향(藝鄕), 미향(味鄕)의 도시라고 합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 소재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현재까지도 왜 광주를 예향이라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서포터즈로 여러 미술계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자주 접했던 단어 역시 ‘예향(藝鄕)’이더군요. 문득 광주를 왜 예향이라고 할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알게된 의향과 예향, 미향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 6월 콘텐츠에 담아보았습니다.
“광주가 왜 의향인가” 물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답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일 것입니다. 광주의 역사이지만 불과 40여년 전 우리가 겪은 ‘기억’이기도 하니까요.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대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사건인만큼 광주 문화계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0년 5월 시민들의 희생은 ‘광주정신’이라는 주제로, 민중미술이라는 형식으로, 한국미술사에 큰 축을 이루었습니다. 역사, 특히 미술분야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은 새로운 지형도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광주에 대한 틀이 정형화된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의향’은 광주매력의 지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매력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향입니다.
광주하면 역시 ‘무등산’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광주는 무등산 아래, 비옥한 평야지대에 터를 잡았습니다. 온화한 환경은 시조, 시가와 같이 풍류할 수 있는 문학이 발달하게 하였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전라도의 ‘소외’의 역사는 판소리, 농악 등을 통해 ‘한(恨)’을 보였으며 그 마음들이 모여 광주의 예향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의 정(情)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그 예향을 꽃피울 수 있었던 배경의 중심에는 ‘무등산’ 있습니다. ‘무등산의 정기’를 받는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비과학적이기도 하지만, 옛 선조들과 광주의 예술인들이 그러했듯 지금도 광주시민들에게 무등산은 힐링의 장소입니다. 무등산으로 산행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하며 느낀 광경과 바람결, 시원한 계곡과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예술가들에게 작업의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광주의 마지막 매력은 ‘미향’입니다. 대부분 ‘광주’하면 ‘음식’을 떠올립니다. 주변에 바다, 산, 평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어떤 재료든 무리없이 구할 수 있었을테고, 따뜻한 날씨는 ‘맛’을 살려주는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고, 시골에서 농사와 김장을 도우며 직접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연치 않은 기회로 직접 ‘장’ 담그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좋은 땅에서 나온 좋은 재료들을 맛있고 멋스럽게 만드는 것이 재료의 대한 예의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재료와 정성이 만나 눈과 입이 즐거운 ‘전라도 음식’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광주의 ‘예향’이라는 타이틀이 자리하게 된 것은 전두환 정부의 문화정책으로 시작된 광주의 문화사업이었습니다. 월간지 『藝鄕(예향)』을 창간하면서 광주, 남도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펼쳐가며 사업을 해나갔습니다.
그 결과 광주의 문화단체나 기관들이 설립됐고,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었습니다. 시민으로서 기대하는 예향이란 우리가 자연스레 살고있는 모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부주도의 ‘예향’ 프로젝트는 ‘성과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오히려 시민들의 삶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글의 계기가 된 최두수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님의 인터뷰(2022년 5월 콘텐츠)에서 ‘광주비엔날레에 합류하고 처음으로 갔던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있던 ‘양동이’가 광주의 마음을, 광주의 예향을 알 수 있게 하였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 살아온 탓에 광주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와 미(美)가 있는지에 무심했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혼자 무등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벌레도 무서워하고, 운동도 잘 하지 못하던 때라 겁도 났었지만, 혼자왔냐며 가져온 배즙과 떡을 나누어주시고 함께 걸음 해주셨던 중년 부부,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장면들, 정상에서 본 광주의 모습은 제가 새삼스레 광주가 참 좋다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삶과 모습, 마음이 오랜 시간 축적되고 그게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 흐름들이 ‘예향’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가 이런 의미에서 광주, 광주의 사람들은 또 다른 공간과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면 ‘예향’을 너머 진정한 ‘향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로 설정된 듯합니다. 광주의 예향 뿐만 아니라 엉클어진 동시대의 이야기들을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풀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참고자료
김봉국, 「‘예향(藝鄕)’ 광주의 탄생: 전두환 정부의 ‘새문화정책’과 지역정체성」, 『역사연구』, No.37, 2019, 639-675.
광주광역시 기획관실, 『(멋과 맛의 향기가 그윽한) 광주의 자랑』, 광주광역시기획관실, 2001
오지윤, 권혜상, 『요즘 광주 생각 : 광주를 이야기하는 10가지 시선』, 꼼지락,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