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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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월_정하선_시민참여워크숍 : 목판화와 큰 숲

시민참여워크숍 : 목판화와 큰 숲


정하선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보다 즐거운 전시관람을 위한 공공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들이 여럿 있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개막 전날인 4월 9일 우리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 충분했던 시민참여워크숍 - 팡록 술랍 목판화 프린팅에 대해 전합니다.

 

이번 시민참여워크숍은 함께 판화를 찍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출신 작가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팡록술랍의 판화입니다. 판화 찍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매주 있을 판화 찍기 프로로그램을 소개하고 팡록술랍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여러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팡록술랍이 광주에 머물면서 제작한 신작의 첫 번째 프린팅 작업이라 더 의미 있었습니다. 이번 워크샵을 위해 미리 광주에 와 프로그램을 준비한 작가를 보며 비엔날레에 대한 그 열정을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작가와 함께 판화를 찍는 작업은 총 2장의 재활용 현수막 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작업을 위해서는 롤러를 이용해 아크릴 물감을 판에 꼼꼼히 펴 바릅니다. 판 위의 물감이 찐득하게 묻어날 정도가 되면 이제 누를 준비가 된 것인데요. 이후 준비된 판화를 찍어낼 재활용 천에 고정시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판화 인쇄는 특별하게 손이 아니라 발로, 음악과 함께 춤추듯이 진행되었습니다. 연주자들의 음악 연주가 흘러나오고 팡록술랍 작가와 또 프로그램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위에서 춤을 추며 직접 발로 밟아가는 동안 물감이 베어 듭니다. 판화를 찍어내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흥을 느끼고 여러 사람들과 이런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판화 목판을 들어 올리면 완성됩니다. 추가로 참여자들이 여유 공간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흔적을 남길 수도 있었습니다. 팡록술랍 작가는 본인이 판화를 만들었지만 이 과정을 함께하고 즐긴 모두의 작품이라고 말하며 의미를 더했습니다.

 

팡록 술랍의 목판화 연작 <광주 꽃 피우다>는 제2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작가가 직접 광주를 답사하며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한 후 제작한 목판화 연작입니다. 이런 팡록 술랍 작품 가까이에 오윤의 목판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 시민참여프로그램에서 목판화가 큰 부분을 차지한 이유, 전시장에서 많은 목판화를 만날 수 있는 이유 짐작이 가시나요?

 

지난 8월호 글 <신명, 그리고 민중미술의 과거와 현재>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홍성담과 오윤의 판화 작품과 80년대부터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광주자유미술협의회'(이하 '광자협')과 '현실과 발언'에 대해 다룬 글인데요. '광자협'이 80년 5월 첫 발표전을 준비하였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무산되었습니다. 이에 '광자협'은 발표전을 할 다음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계엄령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때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이 '목판화'입니다. 비교적 재료가 간단하고 목판이 준비되면 그 후엔 대량 복제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판화로 찍어낸 몇 천부의 작품들이 현장에서 쓰이면서 예술로서의 의미도, 뉴스와 같이 정보 전달로서의 쓰임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판화들은 역사의 한 폭을 담은 자료로 남아 귀중한 아카이브에 축적되었습니다. 그래서 광주

의 5월과 민중미술에서 목판화가 빠질 수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팡록술랍 작가도 작업을 위해 온 광주에서 이런 목판화에 매료되었을 겁니다.

 

광주비엔날레는 한국미술의 진흥과 문화교류 그 중심이 될 비엔날레를 기대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의 민주정신을 국제화로 유도하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재)광주비엔날레 정관에 “한국미술의 진흥과 국제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와 협력으로 개최지 광주를 21세기 태평양 지역의 문화예술 중심권으로 부상시키는데 목적을 둔다”라고 광주비엔날레의 창설 이념이 명시되어 있듯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은 한국 근현대사의 민주주의 역사에 기초한 민주화운동의 민주인권평화의 정신과 예로부터 내려온 예향 호남지역의 예술문화 전통을 기반하는 목적이 결합되어 있습니다.1) 이런 비엔날레 창립 목적과 정체성에 중심이 되는 5∙18 민주화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서 스스로 외치던 목판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번 '시민참여'프로그램에 목판화 찍기 행사가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깊은 일입니다. 우리는 가끔 너무 가까운 나무에 집중하다가 숲을 보는 것을 잊기도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 목판화로 이어지는 큰 숲을 한 번 주목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1) 조사라. (2018). 광주비엔날레에 드러난 장소-특정적 비평 연구. CONTENTS PLUS, 16(4), 75-89.